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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 글은 꼭 잘 써야 하는 것일까?
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-07-09

일리가 있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. 우리 사회는 문장에 대해 엄숙주의적 태도가 없지 않다. 물론 정제된 문장과 치밀한 구조 자체는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나, 그것이 과하지 않느냐는 것이다. 그러다 보니 대중들 역시 문장은 잘 다듬어야만 하는 것이고, 글 재주가 없으면 글은 쓰지 못하는 것으로 알면서, 문장가들을 흉내내기 급급해한다.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후련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. 난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니,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할 수 있는 도구로서 글을 활용하면 되는 것 아닐까. 그렇게 거리낌없이 문장을 구사하다 보면, 축구 오래 하면 실력이 좀 늘 듯이, 알게 모르게 문장의 감수성이 생기는 것이고, 글을 보는 안목도 생기면서, 또 개성도 드러나는 것이다. 특히 직업적 문필가가 되고 싶은 이들은 오히려 문창과나 국문과를 가지 않는 게 좋다. 거기 나왔다 해서 좋은 소설가, 시인 되는 경우 드물다. 또 겨우 등단했도 해도, 데뷔작이 대표작이라는 소릴 듣기 일쑤다. 어찌 보면 시인, 소설가가 너무 많은 세상이기도 하다. 그리고 등단 절차 없이 그냥 시 쓰고 소설 쓰다 동네에서 인정 받고, 쫌 더 잘 써서 크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지, 처음부터 무슨 만루포 날려야겠다는 강박과 욕심으로 글을 쓰니까, 그런 자신도 힘들고 좋은 문장도 나오지 않고 그러는 것 아닐까.



소설가 장강명씨(40)가 2년여 전 전업작가를 선언하면서 한국 문단에는 일종의 사건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. 문학을 공부한 적 없는 작가의 각종 문학상 석권, 동시대와 밀접한 서사,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까지 어느 면에서나 장씨는 희소한 존재다. 무엇보다 엄청난 생산량에서 더 그렇다.

최근 1년간 장씨는 <열광금지 에바로드> <호모 도미난스> <한국이 싫어서>까지 장편소설 3권을 출간했고, 3권이 더 나올 예정이며, 스릴러 소설과 논픽션 등을 쓰고 있다. 그는 지난해 수림문학상, 올해 제주 4·3평화문학상,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았다. 현재 오늘의작가상 후보작 22편 중 유일하게 두 작품이 오른 작가다.

기자였던 장씨는 일을 그만두고 연간 한국인 평균 노동시간보다 긴 2200시간 동안 글을 쓰기로 정해뒀다. 일해서 번 돈으로 책을 사주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한다. 매일 스톱워치로 글쓴 시간을 기록하며 산다는 그를 6일 만났다.

사진 강윤중 기자 yaja@kyunghyang.com


▲ “문단 권력 폐해에 책임이
가장 큰사람도 작가요,
그 고리를 끊을 사람도 작가다”


- 여러 상을 받았지만 문학동네 상으로 정점을 찍은 것 같다.

“상을 4개쯤 받으니 독자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다. 문학동네의 권위를 충분히 느끼고 있고 그래서 거기 응모했던 거다. 그간 문학상에 공모한 것 자체가 인지도를 얻어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목적이었고, 이젠 더 안 할 생각이다. 성공한 전략이 문학상이었을 뿐, 사실 온갖 걸 다 해봤다. 출판사 투고도 많이 했지만 답조차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. 다작도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한다. 카운터블로를 날려서 한번에 인정받으면 좋겠지만, 그러지 못해도 어퍼컷을 반년에 한 번씩 때리면 한 대 맞고 ‘어 괜찮다’ 하는 사람이 생기고 한국소설도 괜찮다며 받아줄 거라고 생각한다. 매년 오늘의 문학상에 2~3편씩 올리는 게 목표다.”

그는 독자를 찾아다닌다. 더 많은 독자를 만나려 의식적으로 장르 소설을 쓰고 독자가 모이는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하려는 노력도 했다. 그는 “현재 라이트 노벨류의 소설이 10~20대를 꽉 잡고 있고, 내가 10년 뒤 상대해야 할 독자는 그들”이라고 말했다.

- 작품 대부분이 ‘지금 내 이야기’처럼 현실과 닿아 있다는 평을 받는다.

“보통 한국소설을 두고 ‘서사가 없다, 골방문학이다’라는데 나는 거기서 비켜나 있어서 상을 탔다고 본다. 한국에서 지금같은 소설이 주류가 된 게 90년대부터인데 이전에 이문열, 황석영, 박경리같은 작가들이 문단에 있었다. 그들은 내가 사는 사회를 전부 다 내 책에 넣어버리겠다, 그런 야심으로 당대를 굉장히 큰 스케일로 그렸지 않나. 우선 나부터가 재미있고 잘 팔리는 책을 읽고 싶고, 현실과 호흡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. 이걸 취재해서 쓰면 소설이 되겠다는 촉을 나이 들어도 유지할 수 있을까, 두려움은 있다. 그 촉은 사실 매일 손으로 일해서 밥 벌어먹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. 젊은 사람들, 사회 최전선에 있는 이들과 엮여야 하는데 나도 집에 틀어박히기 시작한 지 2년이라 걱정이다.”

-장강명 소설은 잘 읽힌다. 소위 ‘미문’에 대한 강박, 곧 문학이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강박이 없어 보인다.

“문장은 이야기를 운반하는 도구로서 철저히 봉사하고 읽는 이의 속도를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 소설 속 상황을 전달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. 기자일 때 글쓰기를 체화했고 내 문장을 바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. 독자로서도 이런 식의 문장을 싫어하지 않는다. 그러나 문장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, 콤플렉스가 있다. 젊은 작가들 소설 읽다가 헉 소리나는 문장을 볼 때가 있다. 나는 이걸 못 쓰겠구나, 부럽기도 하고 탐이 난다는 기분을 느낀다. 집 앞에서 조깅 열심히 해서 그래 너 정도면 몸 좋아, 사람이 이거보다 몸 좋을 필요 있어 하다가 올림픽 체조선수나 발레리나를 봤을 때 하……. 오랜시간 단련을 거쳐 나오는 단단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문장을 봤을 때 부럽다. 그러나 나와 다른 길이고 흉내내진 않을 거다.”

- 고질적인 ‘한국문학 위기론’에 더불어 표절 논란, ‘문단권력’ 논쟁까지 이어졌다. 어떻게 보나.

“소위 ‘문단권력’의 폐해가 있다면 가장 책임이 큰 사람은 작가이며, 그 고리를 끊을 사람도 작가다. 지금은 사막에 창비, 문학동네 같은 오아시스가 몇 개 있고 그 부근에서 지지고 볶는 느낌이다.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사막을 가로질러서 사람 사는 도시로 가는 것이다. 오아시스 부근 생태계에 머무는 건 작가의 임무도 아니고 좋은 전략도 아니다. 문단권력 논쟁은 오아시스 너머를 안 보는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. 나는 사막을 건너고 싶다. 내가, 누군가 사막을 건너고 나면 2015년 문단권력 논쟁은 되게 웃기는 거였다고 알게 될 거다. 한국영화도 비슷했다. 1990년대 초까지 아무도 안 봤지만 지금 봉준호와 박찬욱이 있다. 1990년대 젊은 영화감독이 2015년 젊은 소설가보다 여건이 더 좋았을까. 그저 영화를 사랑했고 믿었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게 있었던 거다.”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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